국제펜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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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국제펜클럽 | 아이피 | 211.217.242.5 |
작성일 | 15-12-02 14:33 | 조회수 | 26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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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버른 펜:
Behrouz Boochani 그의 이름은 베루즈 부차니이다. 그는 이란 서쪽 이람시티에서 1983년 7월 23일 태어났다. 그는 테헤란의 타비아트 마다레스 대학에서 정치지리학과 지정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일했고 몇 개의 이란 신문사-카스보카 주간지, 카눈, 에테마드-들과 이란 스포츠 대행사를 위해서도 일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정계와 테헤란의 쿠르드 지배계층들과의 인터뷰에 관한 기사들을 발간했다. 부차니의 열정은 인권과 쿠르드 문화의 생존에 관련한 일들에 있었다.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는 워야라는 쿠르드 잡지사를 설립하고 편집장을 맡고 발간과 기사작성까지 도맡아 하면서 문화의 자유를 향한 쿠르드인들의 열망들을 기록했다. 그는 이란의 연방 시스템을 지지하는 기사를 썼는데, 그것은 소수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었다. 그 기사는 프랑스에서 열린 회담에서 그가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 필요했던 여권의 허가가 거부당한 뒤 그를 대신하여 전해졌다. 2013년 2월 17일, 이슬람의 혁명 경비 단체의 공무원들이 이람의 워야 사무실에 급습하여 11명의 보차니의 동료들을 체포했다. 그 중 6명이 수감되었다. 보차니는 그날 테헤란에 있었기 때문에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이란 기자 단체의 웹사이트에 그 정보를 게시했고, 보도는 널리 퍼졌다. 보차니는 자신의 안전이 우려되어 몸을 숨겼다. 3달간의 은신 기간동안, 동료들은 그가 체포와 심문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란의 쿠르드 소수집단 중의 한명으로서, 그리고 쿠르드 민주당과 쿠르드 학생 국가 연합의 일원으로서, 그는 위협과 감시를 받는 상황에 익숙해져있었다. 쿠르드 문화를 증진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한 동의와 관련해 그가 해온 일들에 대해 심문을 받고 경고를 받으면서, 그는 더 이상 그런 활동들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부차니는 2013년 5월 23일 이란을 떠났다. 그 해 7월 그는 호주로 가던 도중 호주 해군에 의해 길이 가로막힌 75명의 망명 신청자들 중 한명이었다. 그것은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려던 두번째 시도였다. 첫번째 시도때는 배가 가라앉았다. 당시에 그는 인도네시아의 낚시꾼들에 의해 구조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즉각 호주에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크리스마스아일랜드에 구금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쿠르드 이란인이자 이람 출신인 레자 바라티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는 2013년 8월 말 마누스 아일랜드 이민 구금 센터로 이동되었다. 보차니가 처한 곤경은 마누스 아일랜드에 구금된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공포에 있어서 특별한 동시에 상징적인 상황이었다. 현재는 약 900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베루즈는 PNG 이민 기관에 의해 행정 처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100명의 사람들 중 한명이며 그들은 호주의 망명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작가와 기자로서의 그의 일을 계속 해나가는 중에도 그의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였고, 그의 생명은 캐슬메인 레지던트와 난민구호자 자넷 갈브레이스를 포함하여 호주에 있는 몇 명의 조력자들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지켜졌다. 자넷 갈브레이스는 매일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의 글이 파시어에서 영어로 번역되는 것을 도왔다. 마누스 아일랜드에서의 그의 감금에 관한 그의 설명은 마치 카프카의 악몽처럼 읽혔다. 그는 구금 중에도 쿠르드 간행물에 기사를 쓰는 것을 계속했다. 그는 인권 보호자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UN에 의해서도 그렇게 인식되었다. 그는 호주의 기자들과 인권보호단체들과도 협력을 이루었고, 센터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의 현장들을 보도했다. 레자 바라티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그는 의학적 방치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야만 했던 마누스 아일랜드의 억류자 하미드 카자이의 죽음에 대해 보도했다. 보차니는 올해 초 단식투쟁 당시 로란가우 교도소에 수감료 없이 체포되고 수감된 망명 신청자들 중 한명이었다. 그는 단식투쟁 중 평화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그가 하는 모든 소통이 구금 센터를 운영하는 회사인 트랜스필드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그의 기사 보도와 동료 구금자들을 대신하여 행해온 인권활동들이 위협받았고 정기적으로 조사를 당하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마누스 아일랜드에 감금당한 사람들은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감당했고 고립되었다. 눈에서 멀어진채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멀어지도록 강요당하면서. 로란가우에 남겨져있던 난민들은 센터를 옮기게 되었다. 그들은 재이주를 허가받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나우루에 감금당한 모든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망명 신청하는 것을 단념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신하여 처벌을 받은 희생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부적절한 때에 부적절한 곳에 있었다. 그들은 속임당하고 버려진채 잊혀졌다. 그들은 점점 제정신을 잃어갔다. 베루즈 부차니와 그의 동료 수감자들의 운명은 호주 국가의 책임에 달려있다. 수감당하고 고통받는 대신,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용기있는 목소리는 환영받아야 하고 호주에의 망명 신청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가 이란 정부에게 당했던 처우와 똑같이 감시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 사태의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이자 트라우마워커인 자넷 갈브레이스와의 최근의 대화에서 그는 그가 호주를 향해 항해하는 동안은 행복했다고 말했다. “나는 호주가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도착하면 그들이 나를 한 명의 기자로서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했다:’나는 기자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존중하는 응답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왜 중요한 사실이 될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마누스로 보냈을 때, 나는 이민국에게 말했다: ‘나를 추방하지 마세요. 나를 마누스로 보내지 마세요, 나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100개 이상의 국가들에서 세계적인 작가 연맹을 이루고 있는 국제 PEN은 이번주 부차니를 대신하여 국경 없는 기자들과 호주의 다양한 인권 단체들과의 협력을 이루어 국제적인 캠페인을 런칭하였다. 멜버른 PEN의 전 회장이자 작가인 아놀드 자블레 씀 2015.10.05 2. 오스트리아 PEN: 국제 PEN은 이집트의 시인이자 오스트리아 PEN의 명예회원인 오마르 하젝이 오늘 아침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부르즈 알 아랍 교도소에서 사면되어 풀려났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표한다. 하젝은 2013년 12월 초 한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이후로 구류당해왔다. 수감 위원회에 속한 오스트리아 PEN의 작가들은 다음의 선언서를 공표했다: 오마르 하젝이 이집트 교도소에서 풀려나다 이집트의 작가이자 운동가, 오스트리아 PEN의 명예 회원인 오마르 하젝이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방금 막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그의 해방에 관한 확인을 받았다. 우리는 감옥에서의 기나긴 2년의 세월 끝에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가 다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과 넘치는 기쁨을 표한다. 오스트리아 PEN은 올해 말 비엔나 로에커 벨라그에서 열리는 “에디션 PEN”에서 그의 작품들이 독일어로 발간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시시 대통령에 의해 사면된 100명의 수감자들 중 한명이며 그중에는 기자들과 젊은 운동가들도 있고 나이들고 아픈 수감자들도 있다. 몇몇 국가들에서의 국제 PEN의 이례적인 활동들과 수감 위원회에 속한 오스트리아 작가들의 활동은 이번 사건의 가시성을 높여 이집트 정부가 결코 무시할 수 없게끔 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 회원들의 해방을 위해 일해온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37살의 작가가 알렉산드리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관에 고용되었다가 2013년 법원 앞에서 블로거 차리드 무함마드 사이드를 기밀 살해한 이들에 대항하는 사건에 관한 조사를 요구하는 무허가 시위에 다른 이들과 함께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었다. 오마르는 처음에는 3.5X5.5평방미터의 방에 25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후에는 45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수감되었다. 그의 수감 이후에 도서관은 그를 해고시켰다. 그의 사건은 이집트의 표현의 자유를 향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사건이다. 오마르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중에도 공식 서면을 통해 이 “아, 여기 해가 떠오른다, 감방 가까이. 나는 당신 같은 젊은 청년들이 독재자들과 압제자들이 이 나라의 심장에 상처를 입히는 것을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앤드류 레버 번역) 오스트리아 PEN은 오스트리아 외교부와 카이로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 그리고 비엔나에 있는 이집트 대사관에서 이루어진 중재에 기여했다. 우리의 오스트리아 PEN 명예 회원 자격 수여에 관한 아랍어로 쓴 편지가 이집트의 미디어에 인쇄물과 인터넷을 통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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